《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는 2007년 개봉한 미국의 드라마 영화로, 폴 토마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이 감독과 각본을 맡고, 대니얼 데이 루이스(Daniel Day-Lewis)가 주인공 다니엘 플레인뷰 역을 맡아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이 영화는 업튼 싱클레어의 소설 『오일!』(Oil!)을 느슨하게 원작으로 하여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 석유 산업의 태동기 속, 한 인간이 어떻게 권력과 자본, 욕망에 집착하며 파멸해 가는지를 집요하게 그려냅니다. 대니얼 데이 루이스는 이 작품으로 제80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배우 인생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고, 영화는 당시 사회의 자본주의적 탐욕과 종교의 위선을 냉소적으로 조명하며 깊은 철학적, 정치적 함의를 전달했습니다. 본 글에서는 이 영화의 주제, 캐릭터, 철학적 의미를 중심으로 포스팅하고자 합니다..
주제: 자본과 종교의 충돌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중심 갈등은 다니엘 플레인뷰와 젊은 목사 일라이 선데이(Eli Sunday) 사이의 대립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이들은 각각 자본주의와 기독교를 상징하는 인물로, 영화는 이 두 세력이 어떻게 충돌하며 시대를 형성하는지를 냉철하게 탐구합니다. 다니엘은 광산 노동자로 시작해 석유 개발에 성공하면서 거대한 부를 쌓아가는 자수성가형 인물입니다. 그는 자본주의의 전형적 화신으로, '석유'라는 자원을 통해 모든 것을 지배하려 합니다. 그의 목표는 단순한 성공이 아니라, 타인 위에 군림하는 절대적 권력입니다. 그는 말은 부드럽게 하지만, 속으로는 타인을 경멸하고 불신하며, 사업적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도구화합니다. 이에 반해 일라이 선데이는 신을 빙자한 권력자입니다. 그는 지역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를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영향력 확대와 개인적 야망을 위해 종교를 이용합니다. 그는 다니엘이 석유 시추를 시작하려 할 때, 신의 축복을 구실로 자금과 지위를 요구하며 자신의 교회 권위를 세우려 합니다. 이 둘의 대립은 단순한 인물 간의 충돌이 아니라, '자본의 세속적 권력'과 '종교의 도덕적 권위'가 충돌하는 미국 근대사의 축소판입니다. 영화는 이를 통해 당시 미국 사회가 어떻게 신앙에서 자본으로 중심축이 이동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일라이의 종교는 이미 순수성을 잃고 권력의 도구로 전락한 반면, 다니엘의 자본은 인간성조차 파괴하면서도 끝없는 성장만을 추구합니다. 결국 영화는 자본이 종교를 압도하며, '신을 죽인 인간의 시대'를 선언합니다. 이 상징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다니엘은 노쇠한 상태에서 자신을 찾아온 일라이를 냉혹하게 조롱하고, 결국 그를 곤봉으로 살해합니다. 이는 자본이 신을 살해하는 상징적 장면이며, 더 이상 도덕과 윤리가 통하지 않는 냉혹한 세계를 선언하는 결말입니다.
캐릭터: 욕망과 고립의 괴물
다니엘 플레인뷰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인물 캐릭터로, 단순한 ‘악당’이 아닌, 시대와 사회의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 괴물입니다. 그는 ‘성공’이라는 명분 아래 모든 인간 관계를 거래와 수단으로만 해석하며, 결국 자신만의 고립된 세계를 구축합니다. 처음 다니엘은 가족적인 이미지로 자신을 포장합니다. 그는 고아였던 H.W.를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여, 투자자와 지역민들을 설득하는 데 이용합니다. 하지만 이 ‘아들’이라는 존재 역시 그의 진정한 감정이 아닌, 사업을 위한 이미지 전략임이 드러납니다. 특히 H.W.가 유정 폭발 사고로 청각을 잃자, 다니엘은 그를 외면하고 기숙학교로 보내버립니다. 이는 그가 인간 관계를 철저히 계산적으로 다룬다는 점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다니엘은 매우 복잡한 인물입니다. 그는 H.W.를 버린 후 괴로워하며, 또 가짜 형제 헨리를 발견했을 때 잠시 인간적인 연결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그 헨리가 진짜 형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즉시 살해해 버리는 장면은 그의 내면에 얼마나 깊은 불신과 고립감이 자리잡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모든 인간을 경쟁자, 혹은 이용 대상으로 보며, 진정한 사랑이나 신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는 사람들을 싫어해. 대부분의 사람은 패배자야. 내가 성공하면 그들이 망가지는 걸 보는 게 좋아.”라는 그의 독백은 그가 얼마나 깊은 인간 혐오에 빠져 있는지를 드러냅니다. 이런 감정은 단순한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경쟁 속에서 생존한 자의 비틀린 감정 구조로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끝내 모든 것을 얻은 듯 보입니다. 그는 넓은 저택에서 혼자 살고 있으며, 막대한 부와 지위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 안은 텅 비어 있고, 아무도 그와 함께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만의 세계 속에 갇혀, 결국 마지막에는 살인을 저지르고 “I’m finished.”라는 대사와 함께 영화는 끝납니다. 이 대사는 그의 사업의 완성을 의미하는 동시에, 인간으로서의 완전한 파멸을 상징합니다. 결국 다니엘은 단지 욕망 많은 사업가가 아니라, 미국 자본주의의 극단적 결과물이며, 그 자체로 체제의 그림자입니다. 그의 파괴적 성공은 인간성과 사회적 유대의 종말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이루어진 것이며, 이를 통해 영화는 현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경고를 전합니다.
철학적 의미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서사뿐만 아니라, 영상미와 사운드, 편집, 음악까지 모든 영화적 요소가 정교하게 어우러진 작품입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은 이 영화를 통해 자본주의의 역사적 기원을 시청각적으로 압도하는 방식으로 구성하였으며, 이러한 형식적 완성도는 이 작품이 단순한 드라마를 넘어 ‘현대 자본의 철학적 알레고리’로 기능하게 만듭니다. 가장 먼저 주목할 점은 존 그린우드(Jonny Greenwood)의 음악입니다.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로 잘 알려진 그는 이 영화에서 전통적인 멜로디가 아닌, 불협화음과 음의 반복을 통해 불안과 긴장, 공허함을 음악으로 표현합니다. 이는 다니엘의 내면 세계와 석유 산업의 광기, 그리고 종교적 위선이 충돌하는 전체 분위기를 형상화합니다. 특정 장면에서 음악은 감정을 고조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관객에게 불편함과 위화감을 주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촬영은 로버트 엘스윗(Robert Elswit)이 맡았으며,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촬영상까지 수상했습니다. 카메라는 때로는 광활한 풍경을 파노라마로 담으며 자본의 팽창을, 때로는 인물의 클로즈업을 통해 심리적 긴박함을 포착합니다. 특히 유정이 폭발하는 장면에서의 불기둥과 사운드의 폭발은 자본주의의 야만성과 신화적 이미지를 동시에 제시하며, 영화사에 남을 장면으로 회자됩니다. 또한 영화는 조명과 색감, 구도에 있어서도 고전 회화와 같은 정적 미를 유지하면서, 캐릭터의 감정을 억누르는 연출을 선택합니다. 밝고 어두운 공간의 대비, 침묵의 활용, 느린 줌인과 롱테이크 등은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고립, 탐욕, 파괴—를 감각적으로 드러냅니다. 마지막 장면, 다니엘이 일라이를 살해한 후 “I’m finished.”라고 선언하는 장면은 단순한 서사적 종결이 아닙니다. 거대한 저택의 실내, 텅 빈 볼링장, 쿵 하고 떨어지는 곤봉 소리는 인간성의 공허함과 폭력의 정점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구성입니다. 이러한 연출은 단지 감정을 자극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객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그 끝에는 무엇이 남는가?"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이런 질문을 시청각 언어로 구현한 작품이며, 자본주의, 종교, 인간성, 욕망이라는 주제를 압도적 연출로 재해석하는 걸작입니다. 단순한 드라마 이상의 영화적 체험이 가능한 작품으로, 시대를 뛰어넘어 계속해서 회자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