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이어던>(Leviathan)은 2014년 러시아 감독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Andrey Zvyagintsev)의 작품으로, 러시아 북부의 한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부패한 권력과 개인의 파멸, 종교와 국가의 위선을 강렬하게 고발한 사회 드라마입니다. 성경의 ‘리바이어던’에서 모티프를 따온 이 작품은, 개인이 거대한 사회 시스템에 맞서 싸우는 현실의 부조리함과 절망을 깊이 있게 묘사하며 전 세계 평단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2014년 칸 영화제 각본상, 2015년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 등 수많은 국제 영화제를 통해 그 예술성과 정치성을 인정받았고, 오늘날 러시아 현대 사회를 가장 강력하게 비판한 영화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줄거리
<리바이어던>의 중심에는 한 남자의 절망적인 싸움이 있습니다. 주인공 콜랴는 러시아 북부의 작은 해안 도시에서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며 아내 릴리야와 아들 로마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땅과 집이 지방 자치 단체에 의해 강제 수용될 위기에 처하자, 오래된 친구이자 변호사인 드미트리를 모스크바에서 불러와 맞서 싸웁니다. 하지만 이 싸움은 단순한 행정 분쟁이 아니라, 부패한 시장과 공공기관, 심지어 교회까지 얽힌 거대한 권력 구조에 대한 투쟁으로 확장됩니다. 시장 바딤은 돈과 권력을 이용해 마을의 토지를 강제로 빼앗고, 법정과 경찰, 지역 관료들과 유착되어 어떤 불법도 처벌받지 않습니다. 콜랴는 법적 대응을 시도하지만, 그의 외침은 번번이 무시되고 조롱당합니다. 시장은 드미트리를 협박하고, 불륜을 빌미로 콜랴와 릴리야의 가정을 무너뜨리며, 결국 콜랴는 알코올에 의존하고 절망에 빠집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러시아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구조적 부패입니다. 법은 권력자에게 유리하게 해석되고, 종교는 정의의 편이 아닌 권력의 도구로 전락하며, 언론은 침묵하거나 외면합니다. 이런 시스템 안에서 개인은 아무리 올바른 주장을 해도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내몰리며, 결국 침묵하거나 파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은 이러한 부조리를 ‘리바이어던’이라는 존재에 빗댑니다. 성경에서 리바이어던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괴수로 등장하며, 여기서는 그것이 곧 국가 권력, 시스템, 교회, 혹은 자본의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영화는 러시아뿐 아니라, 모든 국가에서 존재할 수 있는 권력과 인간의 불균형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이자,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가 얼마나 쉽게 짓밟힐 수 있는지를 경고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사회에 던진 질문
<리바이어던>은 단지 정치적 권력만이 아니라, 러시아 정교회를 비롯한 종교 권력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가합니다. 영화 전반에 걸쳐 교회는 마을 공동체의 중심처럼 묘사되지만, 실상은 권력자들과 결탁하여 정의보다는 질서를, 정의보다는 순응을 강조하는 기제로 작용합니다. 영화 속 주교는 시장에게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판단을 넘는다”며 그의 부정을 묵인하고 정당화하는 말을 서슴지 않습니다. 특히 시장 바딤이 교회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하고 주교로부터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장면은 이 영화의 아이러니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는 타인의 집을 불법적으로 빼앗고, 가족을 파탄시키고, 심지어 살인까지 암시되는 행위를 저지르지만, 종교는 이를 ‘신의 뜻’이라며 옹호합니다. 이런 모습은 종교가 개인의 도덕적 기준이나 사회 정의를 위한 힘이 아니라, 권력자의 방패막이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릴리야의 죽음 이후, 교회는 그녀의 장례식조차 외면하고, 모든 책임을 콜랴에게 돌리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런 장면은 종교적 위선과 냉혹한 사회 시스템이 얼마나 긴밀히 결합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며, 신의 존재 자체보다 신을 둘러싼 제도와 담론이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고발합니다. 감독은 러시아 정교회의 권위적 구조와 정치 권력과의 유착을 영화 전반에 걸쳐 은유적으로 드러냅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성서를 인용하며 정의와 희망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모습은, 신의 이름 아래 정당화된 폭력과 침묵을 상징합니다. 결국 영화는 묻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신의 뜻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왜 신은 고통받는 자의 편에 서지 않는가? <리바이어던>은 이러한 신학적, 윤리적 질문을 던지며, 관객이 종교와 권력, 그리고 인간의 도덕성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도록 이끕니다. 이는 단지 러시아 사회의 현실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 보편적 인간 사회에 던지는 도전적인 질문입니다.
철학적 메시지
<리바이어던>은 단지 대사나 사건으로만 이야기를 전달하지 않습니다. 영화의 시각적 언어와 상징들은 등장인물의 운명, 사회의 구조, 그리고 존재론적 질문을 시청자에게 직접적으로 던지는 중요한 장치로 작동합니다. 특히 북극해를 접한 무르만스크 지역의 차갑고 황량한 풍경은 주인공 콜랴의 내면과, 그의 외로운 투쟁을 대변합니다. 영화 속 바다는 끊임없이 출렁이지만, 그 파도 소리는 침묵과 절망의 메아리처럼 들립니다. 광활한 바다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고 무력하며, 그 존재조차 미미한 듯 느껴집니다. 영화의 제목이자 상징인 ‘리바이어던’ 즉 바다의 괴수는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바닷가에 놓인 거대한 고래의 뼈 구조물로 암시됩니다. 썩어가는 고래의 잔해는, 인간 문명의 부패와 몰락, 정의의 사멸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입니다. 콜랴는 영화 내내 바다를 등지고 살아갑니다. 그는 정비소를 운영하며 현실을 살아가는 ‘작은 인간’입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국가와 사회라는 ‘리바이어던’에 의해 짓밟히며 무너집니다. 결국 그는 아내를 잃고, 집을 잃고, 아들을 잃고, 마지막에는 감옥에 갇히는 운명을 맞이합니다. 이 모든 파국은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개인이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서사입니다. 영화는 고요하고 정적인 카메라 워크를 통해 이러한 절망감을 더욱 강화합니다. 과장된 감정 연기나 급박한 편집 대신, 카메라는 인물의 침묵과 주변 풍경을 오랜 시간 응시하며 관객의 몰입을 유도합니다. 그 결과 관객은 단지 콜랴의 불행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무력감과 분노, 체념을 ‘체험’하게 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교회에서는 성대한 미사가 진행되고, 시장은 맨 앞줄에 앉아 경건한 표정을 짓습니다. 하지만 교회 뒤편에 감춰진 진실은 여전히 묻혀 있고, 콜랴는 감옥에서 묵묵히 시간을 견딥니다. 바다는 여전히 흐르고, 리바이어던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 존재는 끝나지 않은 권력의 상징이자, 우리가 사는 사회 구조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처럼 <리바이어던>은 영화를 넘어선 ‘사회 보고서’이자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 기능합니다. 한 남자의 비극을 통해 우리는 모두가 마주한 리바이어던과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질문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싸움이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되새기게 만듭니다.
<리바이어던>은 단순한 드라마가 아닌, 부패한 권력 구조와 종교, 법, 인간의 운명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거대한 국가 시스템과 그에 짓눌린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현실 속 리바이어던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의 치밀한 연출과 강렬한 메시지는 이 영화를 단지 러시아 사회에 대한 고발을 넘어, 오늘날 우리 모두가 마주한 권력과 윤리, 인간성에 대한 보편적 질문으로 확장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