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카피하다>(원제: Certified Copy)는 2010년 이란 출신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Abbas Kiarostami)가 연출한 프랑스·이탈리아 합작 영화로, 줄리엣 비노쉬와 윌리엄 시멀이 주연을 맡은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예술, 진실, 관계의 본질을 탐구하며, ‘진짜와 가짜의 경계’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지적이고 은유적인 로맨스입니다. 단 하루 동안 이탈리아의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남녀의 대화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대화 속에는 철학적 질문과 감정의 층위가 교차하며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특히 사랑과 결혼, 진정성과 위선 사이의 긴장을 극도로 섬세하게 포착해낸 이 작품은, 단순한 연애 영화가 아니라 인간관계의 본질을 고찰하는 영화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메시지
<사랑을 카피하다>는 예술 작품이 진품인지 복제본인지에 대한 토론으로 시작되지만, 곧 이 논의는 인간관계와 사랑, 그리고 결혼이라는 테마로 확장됩니다. 영화는 영국 작가 제임스(윌리엄 시멀)가 자신의 책 ‘진품과 복제품’에 대해 강연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며, 주인공 여성 엘(줄리엣 비노쉬)은 책의 팬이자 미술상으로 등장합니다. 두 사람은 함께 차를 마시고, 마을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지만, 관객은 점차 이들이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이미 오래된 부부일 수도 있다는 단서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영화는 처음에는 낯선 남녀의 첫 만남처럼 보이지만, 이야기의 중반을 넘어가면서 두 사람이 과거를 공유한 부부라는 암시가 등장하며 서사의 구조 자체가 뒤바뀝니다. 관객은 혼란에 빠지고, 이 관계가 진짜인지 연기인지, 과거인지 현재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지는데, 이것이 바로 감독 키아로스타미가 의도한 바입니다. 그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복제도 있다”는 말을 통해, 인간의 감정 역시 원본과 복제를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철학을 영화 속에 담아냅니다. 예술작품의 ‘진품’ 여부가 감상자의 주관에 따라 결정되듯이, 사랑도 그것이 ‘진짜였는가’를 증명하기보다는, 당사자들이 그것을 어떻게 느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엘과 제임스의 관계 역시 그런 맥락에서 보면, 그들이 처음 만난 사이든 오랜 부부든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건 그들이 함께 나눈 감정의 진정성입니다. 이러한 서사의 흐름은 사랑을 단순히 감정적 차원이 아닌 철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승화시키며, 영화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 예술적 사유의 장으로 작동하게 만듭니다. 관객은 단지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 관계는 무엇인가’, ‘진실이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이야말로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가장 깊은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두 개의 해석
영화 <사랑을 카피하다>의 가장 독특한 연출 기법은 바로 '시간의 겹침'입니다. 영화는 단 하루 동안 벌어지는 남녀의 산책과 대화를 그리지만, 그 대화 속에는 수년간의 감정, 기억, 기대, 상처가 중첩되어 있습니다. 감독 키아로스타미는 명확한 플래시백이나 회상의 장면 없이도, 등장인물의 말투와 눈빛, 주고받는 농담과 논쟁 속에 관계의 이력을 자연스럽게 담아냅니다. 초반부에는 엘이 제임스를 존경하는 듯한 말투로 그를 대하지만, 점차 서로에 대한 불만, 실망, 심지어 분노까지도 드러납니다. 관객은 이들이 처음 만난 사이인가 하는 의심을 품게 되며, 어느 순간부터 이들은 오래된 부부처럼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남편의 무관심, 아내의 외로움, 지나간 추억에 대한 언쟁은 누가 봐도 수년간 함께 살아온 사람들 사이에서나 나올 법한 대화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 관계가 진짜인지 연기인지 끝까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화의 의도된 ‘불확실성’이며, 이는 관객이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갖고 영화와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게 만듭니다. 이 영화는 줄거리를 소비하는 콘텐츠가 아니라, 해석을 유도하는 철학적 텍스트에 가깝습니다. 또한 공간과 시간의 사용 방식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엘과 제임스는 투스카니의 고즈넉한 마을을 천천히 걸으며 대화를 나누는데, 이 공간은 그 자체로 관계의 은유처럼 작동합니다. 미로 같은 골목, 오래된 교회, 고요한 카페 등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두 사람의 감정 상태와 서사 구조를 암시하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마치 이 마을 전체가 그들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지며, 관객은 정적인 공간 속에서도 깊은 심리적 몰입을 경험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대사의 양보다 ‘말의 여백’에서 진짜 이야기가 생성되는 작품입니다. 같은 대사를 듣더라도 관객의 감정 상태, 경험, 연애관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이런 ‘열린 서사’ 구조는 영화가 반복 관람에 적합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진정성의 역설
<사랑을 카피하다>의 궁극적인 질문은 ‘사랑의 본질’에 대한 것입니다. 영화가 전개될수록 관객은 사랑이 진짜였는지 아닌지를 묻게 되지만, 감독은 그 질문 자체를 뒤집습니다. 어쩌면 사랑은 본질을 갖기보다는, 그것을 믿는 자의 감정 안에만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엘과 제임스의 관계가 부부인지, 아니면 단지 처음 만난 남녀가 관계를 연기하는 것인지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 시간 속에서 진짜 감정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두 사람이 실제 부부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들이 나누는 대화 속 고통과 기쁨이 거짓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 관계는 ‘진짜’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설정은 관객에게 진정성에 대한 역설을 던집니다. ‘진짜 사랑이란 무엇인가’, ‘오래된 관계 속 사랑은 사라진 것일까’, ‘복제된 감정도 진짜일 수 있는가’. 영화는 이 모든 질문에 정답을 주지 않지만, 오히려 각자의 경험을 통해 해석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영화는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 됩니다. 마지막 장면은 이런 역설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엘이 제임스를 바라보며 욕실 거울 앞에서 화장을 고치고, 제임스는 교회 종소리를 듣고 천장을 올려다보는 모습은, 관계가 끝난 듯하면서도 다시 시작될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그것은 화해의 시작일 수도, 마지막 이별의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이 모호함은 현실의 사랑과 다르지 않습니다. 끝이라고 믿었던 순간에 다시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고, 완벽한 이해 끝에 결국은 헤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이 영화에서 사랑이란 “하나의 완성된 감정이 아니라 끊임없이 복제되고 해석되는 감정”임을 말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그것이 진짜인지, 혹은 스스로 만든 믿음인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점입니다. 결국 <사랑을 카피하다>는 사랑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묻는 영화가 아니라, 그 사랑이 우리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성찰하게 만드는 철학적인 로맨스입니다. 그리고 그 점에서 이 작품은 단순한 감상용 콘텐츠를 넘어, 깊은 사유를 유도하는 예술적 체험으로 남습니다.
<사랑을 카피하다>는 ‘복제’라는 개념을 통해 사랑과 진정성, 관계와 감정의 본질을 되묻는 영화입니다. 단 하루 동안 벌어지는 대화 속에 수년간의 삶과 사랑이 녹아 있으며, 명확한 답을 주지 않지만 질문을 통해 더 깊은 사유로 이끄는 작품입니다. 사랑이란 무엇인지, 관계란 어떻게 이어지고 무너지는지, 그리고 진짜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지를 묻는 이 영화는, 모든 사랑의 단계에 있는 이들에게 지적이고 감성적인 자극을 동시에 선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