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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아들 영화의 연출 방법, 줄거리, 윤리적 영화 역할

by 영화영화 2025. 7. 15.

《사울의 아들》(Son of Saul, 2015)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헝가리 영화로, 인간성과 절망, 구원의 가능성에 대해 극단적인 조건 속에서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라슬로 네메시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제68회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2016년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비평과 흥행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홀로코스트를 묘사한 또 하나의 전쟁영화가 아닌,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내면을 정면으로 응시한 철학적 영화로 평가받습니다.

 

사울의 아들 포스터 이미지

 

연출 방법

《사울의 아들》이 가장 독특한 지점은 바로 영화 전체가 주인공 사울의 시점으로만 서사를 구성한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장면은 롱 테이크, 4:3 비율의 좁은 화면, 인물에 밀착한 숄더 샷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울의 뒷모습이나 옆모습만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관객이 마치 사울의 바로 뒤를 따라다니는 듯한 느낌을 주며, 수용소의 참혹함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게 만듭니다. 카메라는 전통적인 전쟁 영화처럼 학살 장면이나 시체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변부에서 흐릿하게, 소리로, 혹은 배경에서 스쳐 지나가듯 표현되는데, 이는 더욱 강렬한 충격을 줍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극단적인 폭력과 잔혹함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고도 관객에게 정신적인 공황과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사울은 나치의 수용소에서 시체 처리 등 '특별 업무'를 맡은 유대인 수감자들인 '존더코만도(Sonderkommando)'입니다. 그는 가스실에서 사망한 소년의 시신을 자신의 아들이라고 믿고, 유대식 장례를 치르기 위해 끊임없이 시체를 숨기고, 랍비를 찾고, 시신을 탈출시키려 시도합니다. 그가 이 모든 위험을 감수하며 움직이는 과정을 카메라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밀착하며 따라다닙니다. 이러한 연출은 ‘보는 것’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이 영화에서 관객은 수용소의 전경을 '볼 수 없으며', 심지어 인물의 얼굴조차 제대로 응시할 수 없습니다. 대신 인간의 숨소리, 날카로운 외침, 총성, 울음소리가 온몸을 감쌉니다. 시각적 차단은 오히려 감각을 확장시키며, 사울의 감정과 혼돈, 고통을 더 절절하게 전달합니다. 이는 단순한 영화적 장치가 아닌, 수용소의 참상을 소비적 시선으로 소비하지 않겠다는 윤리적 선택이기도 합니다. 《사울의 아들》의 시점은 그러한 폭력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방식으로 서사를 구성하며, 전쟁이나 학살을 재현하는 기존 영화들과는 차별된 미학과 윤리의식을 보여줍니다. 이 독특한 시선은 관객을 끝없는 질문 속에 빠뜨리며, 우리가 과연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볼 자격이 있는가’를 묻게 만듭니다.

줄거리

《사울의 아들》에서 주인공 사울이 자신의 아들이라고 믿는 소년의 시체를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는 수용소에서 시체를 소각하는 존더코만도라는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만은 '죽은 자로서' 예를 다하고자 합니다. 사울은 위험을 무릅쓰고 아이의 시체를 숨기고, 랍비를 찾아 장례를 준비하며, 마지막까지 아이의 유해를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합니다. 이 행위는 많은 관객에게 의문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아이가 정말로 사울의 친아들인지, 혹은 환상이나 자기위안인지 영화는 명확히 밝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정말 아들이냐’가 아니라, 그 아이를 아들로 믿고 의례를 행하려는 사울의 ‘행동’ 그 자체입니다. 이 행위는 광기의 세계에서 인간이 마지막까지 붙들고자 하는 윤리와 신념의 형태로 읽히며, 바로 그 지점에서 영화는 철학적 깊이를 획득합니다. 사울은 공동체의 가치가 완전히 붕괴된 지옥과도 같은 수용소 안에서, 최소한의 인간적 행위를 통해 인간 존엄을 회복하고자 합니다. 이는 단지 아이 한 명의 시체를 매장하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한 마지막 행위인 것입니다. 유대교에서 죽은 자에 대한 장례 의식은 매우 중요하며, 이를 통해 망자의 영혼이 평안히 안식에 들 수 있다고 여깁니다. 사울은 그런 장례를 통해 인간성을 지키고, 자신이 아직 인간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수많은 동료들이 생존을 위해 폭동과 탈출을 준비하는 동안, 사울은 끊임없이 랍비를 찾고, 시체를 숨기며, 장례를 위한 조그마한 공간을 찾기 위해 분투합니다. 이는 ‘비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영화는 오히려 이 비합리성 속에서 인간성의 불꽃을 포착합니다. 결국 사울의 여정은 실패로 끝날 수도 있고, 성공했는지 여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그 아이의 시체를 부여잡고, 시선을 거두지 않으며, 인간의 존엄과 신념을 지키는 데 헌신합니다. 이는 극한의 조건 속에서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인간다움’의 상징이며, 사울의 행동은 영화 전체에 걸쳐 깊은 윤리적 울림을 남깁니다.

윤리적 영화 역할

《사울의 아들》은 단순히 이야기나 연기, 연출이 뛰어난 영화에 그치지 않고,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참극을 어떻게 영화라는 매체로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윤리적 성찰이 담긴 작품입니다. 감독 라슬로 네메시는 영화 속에서 '보여주기'를 최대한 절제하며, 수용소를 하나의 공포 쇼처럼 소비하는 기존 영화들의 연출 방식에 반기를 듭니다. 이 작품은 폭력을 정면으로 묘사하지 않고, 관객의 상상력과 음향, 그리고 주변적 장면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선택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무수한 시체와 고통이 하나의 ‘이미지’로 소비되는 것을 막으며, 역사적 고통을 ‘체험’이 아닌 ‘반성’과 ‘응시’의 대상으로 전환시킵니다. 영화가 수용소를 다루는 방식은 매우 조심스럽고 절제되어 있으며, 이는 영화 윤리에 있어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됩니다. 촬영감독 마티아스 에르들리가 구현한 좁은 화면비율(4:3)은 마치 감옥 같은 프레임 안에 사울을 가두는 듯한 느낌을 주며, 현실의 압박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이러한 화면 구성이 관객에게 주는 불안감과 피로감은, 오히려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강화시킵니다. 편안함을 제공하지 않는 카메라워크는 ‘보기’의 권리와 책임을 묻게 만들며, 우리가 이 고통을 단순히 감상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내포합니다. 배우 뢰리히 게저의 연기 또한 주목할 만합니다. 그는 감정을 과하게 드러내지 않으며, 오히려 내면의 복잡한 감정과 절망을 눈빛, 숨결, 동작의 미세한 변화로 표현합니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은 오히려 수용소라는 지옥 안에서 감정을 억제하고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어 기제로 보이며, 이는 관객에게 더욱 큰 감정적 울림을 선사합니다. 결과적으로 《사울의 아들》은 역사적 참극을 다룬 영화 중 가장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접근을 보여준 작품입니다. 그 어떤 감정 과잉이나 서사적 장치 없이도, 인간성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우리가 어떻게 응답할지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에게 윤리적 태도와 책임을 요구하는 영화이며, 그 진지한 태도는 시대를 초월해 오랫동안 회자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