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액트 오브 킬링 영화의 파격, 침묵의 공모, 윤리적 질문

by 영화영화 2025. 7. 10.

《액트 오브 킬링》(The Act of Killing)은 2012년 조슈아 오펜하이머(Joshua Oppenheimer)가 감독하고, 베르너 헤어조크와 에롤 모리스가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 1965년 군사 쿠데타 이후 자행된 반공 대학살을 주제로 하며, 당시 수십만 명을 학살한 자경단 가해자들을 카메라 앞에 세워 자신들의 범죄를 ‘영화로 재연’하게 만든 실험적이면서도 충격적인 작품입니다. 단순히 역사적 진실을 조명하는 것을 넘어, 가해자의 심리, 사회의 침묵, 국가적 기억 왜곡까지 파고드는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허무는 획기적인 형식과 내용으로 전 세계 영화계에 강렬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액트 오브 킬링 영화의 포스터 이미지

 

가해자의 시선으로 진실을 묻다 – 형식과 접근의 파격

《액트 오브 킬링》은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의 방식—피해자 인터뷰, 역사적 기록, 전문가 해석—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히려 ‘가해자’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감독 오펜하이머는 인도네시아 북수마트라 지역에서 1965년 반공주의 대학살 당시 주도적으로 활동했던 자경단원 안와르 콩고(Anwar Congo)를 비롯한 여러 가해자들과 직접 접촉해,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과거를 직접 “연기”하고 “연출”하도록 유도합니다. 가해자들은 헐리우드 갱스터 영화나 뮤지컬 형식에 심취해 자신들의 범죄를 ‘멋진 액션’처럼 재연하며, 자신들의 살인을 무용담으로 자랑스럽게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고문 장면을 연출하고, 희생자 역을 맡은 동료를 향해 조롱 섞인 연기를 하면서도, 죄책감의 그림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펜하이머는 이러한 광기 어린 왜곡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냄으로써, 단지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는 인도네시아 사회의 왜곡된 기억과 도덕적 부패를 낱낱이 드러냅니다. 영화의 가장 충격적인 지점은, 가해자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전혀 반성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권력층으로부터 존경받으며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정치인과 방송인, 군인들과 어울리며 여전히 지역사회의 유력 인사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오펜하이머는 이들을 비난하지 않으며, 대신 그들이 자신의 기억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정당화하는지를 관찰자적 시선으로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특히 이 영화의 형식적 실험성은 다큐멘터리 장르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가해자들이 자신들의 범죄를 영화로 재현하면서 등장하는 뮤지컬 장면, 환상적 공간, 심지어 희생자 유령의 등장까지는 일종의 ‘다큐-극영화 하이브리드’라고도 부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은 마치 내면의 심리를 외부화하는 심리극처럼 기능하며, 관객은 거짓과 진실, 허구와 다큐멘터리의 경계에서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이 영화의 핵심이며, 무감각한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이 됩니다.

침묵의 공 – 공동체가 만든 괴물

《액트 오브 킬링》은 단순히 한두 명의 개인적 일탈이나 잔혹성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영화가 겨냥하는 것은 집단적 망각과 체제적 공모입니다. 인도네시아 사회는 1965년 대학살 이후 수십 년간 이를 “공산당 청소”라는 미명 하에 미화해왔고, 가해자들은 ‘국가의 영웅’으로 칭송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반면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침묵을 강요당한 채, 사회적 낙인 속에 살아가야 했습니다. 영화 속 안와르 콩고는 스스로가 살해한 방식, 철사로 목을 조르며 고통을 줄이고, 피를 덜 튀게 한다고 주장을 자세히 설명하며, 이를 일종의 ‘인도적인 살해 방식’으로 정당화합니다. 그는 종종 영화 속 갱스터 장면을 따라하며,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수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서술은 단지 그의 개인적 광기가 아니라, 집단이 만든 도덕적 공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가 점차 ‘희생자 역할’을 맡아 재연하게 되는 장면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입니다. 한 장면에서는 자신이 고문했던 희생자의 연기를 하다가 감정이 북받쳐 올라 ‘지금 뱉을 것 같다’며 중단을 요청합니다. 그는 오열은 아니지만, 말할 수 없는 무게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단순한 고발이 아니라, 도덕적 반추의 가능성을 엿보게 만듭니다. 하지만 영화는 결코 희망적인 결말을 주지 않습니다. 주변 인물들은 끝까지 반성을 하지 않고, 학살을 게임처럼 소비하거나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합니다. 한 국회의원은 “과거의 일은 어쩔 수 없었고, 필요했다”며 웃음을 터뜨리고, 방송 진행자는 “학살은 곧 애국이었다”고 대담하게 발언합니다. 이는 과거의 범죄가 ‘역사’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메커니즘을 보여주며, 침묵과 방조, 그리고 망각이 어떻게 폭력을 유지시키는지를 드러냅니다. 결국 《액트 오브 킬링》은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가 과연 얼마나 도덕적으로 각성되어 있는지를 되묻는 작품입니다. 단지 인도네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어느 사회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체계화된 폭력’의 가능성을 경고합니다.

영화가 던지는 윤리적 질문 – 보는 자의 책임

《액트 오브 킬링》은 관객에게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들을 이렇게까지 따라가고 보여주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윤리적 딜레마입니다. 감독은 가해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구성하며, 그들이 고문과 살인을 연기하는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이때 관객은 분노보다는 당혹감, 때로는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이 불편함은 의도된 전략입니다. 영화는 폭력을 단순히 ‘나쁜 것’으로 구분 짓는 대신, 그 폭력을 가능하게 만든 구조와 문화, 인간의 심리를 탐색합니다. 가해자가 자랑처럼 말하는 학살의 기억이, 정작 재연 과정에서는 그들에게도 혼란과 무력감을 안겨주는 장면은 인간 심연의 복잡함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악을 미워하지만, 동시에 그 악을 만들어낸 구조 속에 있음을 이 영화는 보여줍니다. 또한 이 영화는 ‘기억’과 ‘재현’이라는 개념에 대한 성찰을 요구합니다. 안와르가 범죄를 ‘연극처럼’ 재연할 때, 그는 단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새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역사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누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갖게 됩니다. 이 영화는 ‘승자의 역사’가 얼마나 잔혹한 거짓을 만들 수 있는지를 예시하는 동시에, 진실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관객으로서 우리는 이 잔혹한 쇼를 소비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보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단순한 연민이나 분노가 아니라, 폭력의 구조와 사회적 기억에 대한 책임 있는 질문이 필요하다는 것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특히 권력과 이념, 체제와 개인 사이에서 ‘악’이 어떻게 일상적으로 작동하는지를 꿰뚫는 이 영화는, 우리가 얼마나 쉽게 진실을 외면하고, 불의와 타협하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액트 오브 킬링》은 충격적이고, 잔혹하며, 보기 힘든 영화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매우 중요한 영화이며, 다큐멘터리가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희귀한 예입니다. 역사란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의 얼굴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뚜렷하게 각인시켜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