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의 작별>(Adieu au langage, 2014)은 프랑스 누벨바그의 거장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가 83세의 나이에 발표한 실험 영화로, 언어의 한계, 인간 존재의 본질, 영화적 매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독창적 작품입니다. 영화는 줄거리와 논리적 흐름을 해체하고 이미지, 소리, 텍스트, 시적 내레이션이 중첩된 파편적 구성으로 이뤄져 있으며, 고다르 특유의 철학적 언어와 급진적 영상 언어로 인해 많은 논쟁과 찬사를 동시에 받았습니다. 201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그 예술성을 인정받았고, 특히 영화에 3D를 실험적으로 활용한 점에서 미학적, 기술적 시도 또한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언어와의 작별>은 전통적 서사와 완전히 결별한 영화로, 관객에게 ‘보는 것’이 아닌 ‘사유하는 것’의 체험을 선사합니다.
해체된 서사
<언어와의 작별>은 전통적인 영화 문법을 완전히 거부합니다. 명확한 인물 설명도, 시간 순서도, 일관된 플롯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이름조차 분명하지 않으며, 그들이 나누는 대사는 단절되고 혼란스럽습니다. 이 모든 것은 ‘언어의 해체’라는 영화의 주제 의식을 시청자가 직접 체험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입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한 커플의 대립과 재회, 그리고 개 한 마리(고다르 본인의 반려견, 로시)가 바라보는 세계를 교차해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서사는 어디까지나 암시적인 수준이며, 이야기라기보다는 단어, 이미지, 관념, 시각적 파편이 서로 충돌하며 펼쳐지는 몽타주의 흐름으로 존재합니다. 대사는 시적이고 단절적이며, 철학자들의 인용문과 고다르 자신의 사유가 교차되어 등장합니다. “사랑은 언어를 요구하지만, 언어는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식의 문장은 영화 전체의 정서를 요약합니다. 이러한 구조는 언어가 본래 가지고 있는 의미 전달의 기능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즉, 우리는 언어로 세계를 설명하려 하지만, 언어 자체가 진실을 왜곡하거나 완전히 포착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드러냅니다. 영화는 이 한계를 과감하게 드러내고자 하고, 그 결과 관객은 이야기의 ‘전달’이 아닌 ‘단절’을 마주하게 됩니다. 고다르는 언어가 지닌 계몽적 혹은 폭력적 권위를 해체하면서, 동시에 이미지와 사운드, 리듬으로 새로운 ‘언어’를 창조합니다. 영화 속 한 인물은 “사실 언어는 재앙이다”라고 말하고, 또 다른 인물은 “언어를 믿지 마라”라고 외칩니다. 이와 같은 선언은 영화 전체의 핵심 주제, 즉 ‘언어와의 작별’이라는 선언적 메시지를 강화하는 장치입니다. 결국 영화는 이야기나 감정의 전달보다는, 언어와 사고, 인식과 표현의 틀을 흔들기 위한 시도이며, 고다르는 이를 통해 관객에게 새로운 사고 방식을 제안합니다. 기존 영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혼란스럽고 불친절하게 느낄 수 있지만, 그 혼란 속에서 언어 바깥의 감각과 존재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언어와의 작별>의 존재 이유입니다.
영상 언어의 확장
이 영화는 기술적으로도 혁신적인 시도를 보여줍니다. 장 뤽 고다르는 3D 기술을 단순한 입체감의 도구로 활용하는 대신, 그것을 새로운 이미지 구조와 지각 방식으로 전환시킵니다. 일반적인 3D 영화가 시청자의 몰입을 목표로 한다면, <언어와의 작별>은 그 몰입을 의도적으로 파괴합니다. 고다르는 ‘분리된 3D’를 통해 두 개의 이미지를 좌우 각각의 카메라로 분리 촬영한 후, 화면을 통해 시청자 두 눈의 인식을 분할시키는 실험을 합니다. 이는 양안 시차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지만, 관객의 눈은 두 이미지를 동시에 받아들이지 못해 극도의 혼란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기법은 단지 시각적 효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영화의 주제와 밀접한 연관을 가집니다. 언어와 세계, 감정과 사고가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화면 속 이미지 또한 하나의 시점으로는 온전히 포착되지 않습니다. 고다르는 이를 통해 “우리는 늘 부분적으로밖에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합니다. 또한 영화에는 이미지와 사운드의 충돌이 빈번히 발생합니다. 화면에서는 정적인 장면이 이어지는데 갑자기 폭음이 울리거나, 반대로 시각적으로 격렬한 장면에 거의 무음이 이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는 기존 영화 문법에서 말하는 ‘동기화’의 원칙을 철저히 깨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실험은 관객의 감각을 깨우고, 영화라는 매체가 단지 ‘보는 것’만이 아니라 ‘듣고 생각하는 것’이라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고다르의 3D 실험은 단지 기술적 혁신이 아니라, 이미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으로 연결됩니다. 그는 시각적 리얼리즘을 넘어서, 이미지 그 자체의 진실성에 대한 회의, 그리고 새로운 영상 언어의 가능성을 탐구합니다. “이미지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이 영화의 영상 언어를 지배하는 철학적 골자이며, 고다르는 그것을 감각적 혼란을 통해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체험하게 합니다. 이처럼 <언어와의 작별>은 3D라는 기술을 가장 철학적으로 사용한 영화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시각예술과 영화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미학적 영역을 개척한 작품으로 남습니다.
시적 철학
<언어와의 작별>은 고다르의 필모그래피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언어’, ‘정치’, ‘영화 매체에 대한 반성’을 응축시킨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60년대 누벨바그의 대표 주자로서 기존 영화 문법을 해체하고 새로운 형식의 영화를 창조해낸 고다르는, 이 영화에서 다시 한 번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고다르는 젊은 시절 <네 멋대로 해라>, <비브르 사 비> 등에서 이미 서사와 내레이션의 해체를 시도했고, 이후 정치적인 시기에는 영상과 선전의 관계를 탐구했으며, 후기에는 영상 에세이 형식의 <영화사(Histoire(s) du cinéma)>를 통해 영화 자체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이어갔습니다. <언어와의 작별>은 이러한 고다르의 전작들의 연장선이자 집대성된 선언입니다. 특히 이 영화는 ‘작별’이라는 개념을 단지 슬픈 이별이나 종결로 그리지 않습니다. 영화 속 개 로시의 시선은 인간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존재로 제시되며, 언어를 벗어난 감각과 존재의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인간이 만든 문법과 체계를 초월하여, 본능과 감각, 침묵 속에서 새로운 진실이 피어난다는 고다르의 메시지는 철학적이고 시적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이제 말하지 말고, 들어라. 더 이상 언어로 설명하려 하지 말고, 감각하라”는 듯한 메시지가 전달됩니다. 이는 고다르가 단지 ‘언어를 떠난다’는 의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언어 이후의 세계를 향한 열린 사유를 제안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작별’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며, 새로운 영화 언어와 인식의 가능성을 위한 선언으로 볼 수 있습니다. 비록 난해하고 실험적이며, 모든 관객에게 쉽지 않은 영화지만, <언어와의 작별>은 영화라는 예술 매체의 가능성을 끝까지 밀어붙인 결과물입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불친절한 퍼즐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기존 사고의 틀을 깨고 새로운 인식의 세계로 이끄는 열쇠가 됩니다. 이 영화는 단지 고다르의 유산일 뿐만 아니라, 미래의 영화가 어떻게 진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언과도 같습니다.
<언어와의 작별>은 단순한 영화가 아닌, 하나의 시적 철학이며 시청각적 선언입니다. 서사를 해체하고, 언어를 해체하며, 감각과 철학을 조화롭게 융합시킨 이 작품은 장 뤽 고다르의 마지막 혁명이며, 동시에 영화라는 예술 매체의 미래에 대한 성찰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 안에서 언어의 한계 너머를 응시하려는 시도는 모든 관객에게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