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객 섭은낭>(The Assassin, 2015)은 대만의 거장 허우샤오시엔(Hou Hsiao-Hsien) 감독이 8년 만에 발표한 작품으로, 중국 당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한 전통 무협 장르에 실험적인 미학을 결합한 독창적인 영화입니다.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이나 장예모의 <연인> 등으로 대표되던 동양의 무협 서사와는 결을 달리하는 이 작품은, 극도로 절제된 서사와 고요한 영상미를 통해 한 여성 자객의 내면을 응시하며 ‘살인과 인간성’, ‘의무와 자유’의 경계를 질문합니다. 제68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예술성과 연출력을 인정받았고, 이후 전 세계 예술영화 팬들과 비평가들로부터 ‘시네마적 시(詩)’로 불리며 극찬을 받았습니다.
주인공의 초상
<자객 섭은낭>의 주인공 섭은낭은 어릴 적 황실로 보내져 자객 수련을 받은 여성으로, 임무를 수행하며 고위 관리들을 암살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영화는 그녀가 새롭게 맡은 임무—옛 연인이자 위박절도사인 천옹(천첩) 암살을 둘러싼 갈등과 여정—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통 무협 영화처럼 격렬한 전투나 복수극이 아닌, 섭은낭의 침묵과 고독, 그리고 ‘죽이지 못하는 선택’에 초점을 맞추며 그녀의 내면을 정밀하게 조명합니다. 섭은낭은 자객으로서 완성되었지만, 인간으로서의 감정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그녀는 천옹을 죽일 기회를 몇 차례 잡지만 번번이 주저합니다. 이는 단지 과거의 감정 때문만은 아닙니다. 영화는 섭은낭의 주저함을 통해 ‘살인의 윤리’와 ‘의무의 모순성’을 사유하게 만듭니다. 죽이라는 명령을 따라야만 하는 자객이면서도, 인간으로서 타인의 삶을 끝내는 것을 거부하는 이중적인 존재. 이러한 내적 갈등은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고요한 시선, 침묵의 공간, 반복되는 장면들을 통해 더욱 깊게 표현됩니다. 섭은낭은 대부분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감정은 눈빛과 걸음, 허공을 응시하는 시선으로 전달됩니다. 이처럼 말보다 ‘응시’와 ‘멈춤’이 중심이 되는 영화 구조는, 인물의 심리보다도 존재의 본질을 질문하는 데 집중합니다. 인간은 왜 죽이는가? 죽이지 않음은 약함인가? 혹은 그 반대인가? <자객 섭은낭>은 자객이라는 인물형을 통해 ‘살인’이라는 무협 장르의 핵심 요소조차 해체하고, 그 내면에 존재하는 인간성의 빛과 그림자를 탐구합니다. 섭은낭은 결국 천옹을 죽이지 않습니다. 그녀는 명령을 거부하고, 자기만의 길을 선택합니다. 이는 비극적인 결말이 아니라, 자유와 주체성의 회복을 뜻하는 결말입니다. 무협영화 속 자객이라는 장르적 인물이 ‘살인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 <자객 섭은낭>은 고전 무협의 틀을 완전히 해체하고 현대 영화의 철학적 지평으로 확장됩니다.
연출 방식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자객 섭은낭>을 통해 전통 무협 장르의 형식적 규범을 완전히 벗어납니다. 빠르고 역동적인 액션, 뚜렷한 선악 구도, 극적인 음악은 철저히 배제되며, 대신 정적인 화면 구성과 길게 이어지는 롱테이크, 자연광을 활용한 촬영, 그리고 풍경과 침묵이 영화의 주된 리듬을 형성합니다. 이처럼 절제되고 고요한 스타일은 인물의 내면뿐 아니라, 시공간 자체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이어집니다. 특히 영화는 ‘정지된 이미지’와도 같은 화면 구성이 인상적입니다. 많은 장면이 실내외를 막론하고, 마치 동양화처럼 정지된 풍경 속에서 펼쳐집니다. 화면은 자주 커튼이나 나무, 기둥 등에 의해 일부 가려지고, 인물은 프레임 속에서 벗어나 있거나, 중심에 위치하지 않는 구도를 통해 ‘시선의 비틀림’을 시도합니다. 이는 관객에게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를 질문하게 만듭니다. 촬영을 맡은 마크 리핑핑(Mark Lee Ping-Bin)은 빛과 그림자의 섬세한 대조,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이슬 맺힌 꽃잎, 안개 낀 산등성이 등을 통해 영화 속 시공간에 깊은 정서를 부여합니다. 이러한 시각적 언어는 단지 ‘아름다움’을 위한 미장센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과 상황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또한 <자객 섭은낭>은 시공간의 ‘흐름’을 멈추는 방식으로 인물의 정체성을 구성합니다. 서양 영화가 원인과 결과, 시간의 직선적 흐름을 강조한다면, 이 영화는 순환적이고 비선형적인 시간감을 통해 삶과 죽음, 의무와 자유, 과거와 현재를 하나의 공간에 병치시킵니다. 이처럼 허우샤오시엔은 고전 회화를 보는 듯한 영화적 시각미를 통해, 단지 무협의 미학이 아닌 존재론적 질문을 형상화합니다. 관객은 섭은낭의 고독과 침묵을 따라가면서, 결국 자기 내면의 정적을 응시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어떤 이야기보다도 강하게 말합니다. “지금, 당신은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응시하고 있는가?”
철학적 재구성
<자객 섭은낭>은 명백히 무협영화의 외피를 가지고 있지만, 그 실질은 철학 영화에 가깝습니다. 허우샤오시엔은 무협 장르가 가진 본질적인 속성들, 정의, 복수, 충의, 살인을 해체하고, 그 자리에 침묵, 성찰, 의문을 채워 넣습니다. 이는 단지 장르의 변주가 아니라, 영화라는 예술 형식이 전달할 수 있는 감정과 사유의 폭을 확장하는 시도입니다. 섭은낭의 임무 수행은 일종의 의례처럼 보이지만, 그녀가 죽이지 않는 순간부터 이 영화는 ‘무협’에서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무협 장르에서 자객은 철저히 훈련된 살인자이자, 도(道)를 따르는 자로 묘사되었습니다. 그러나 섭은낭은 이러한 전통적 자객의 도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녀는 도를 따르기보다는 ‘인간’을 선택하며, 명령보다는 양심을 우선합니다. 이러한 설정은 인간이 시스템 속에서 주어진 역할을 어떻게 이탈할 수 있는지를 묻는 철학적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영화는 섭은낭의 침묵을 통해 말을 거부하고, 그녀의 선택을 통해 운명을 거스릅니다. 살인을 거부하는 그녀의 손짓은, 역설적으로 무협 장르에서 가장 강력한 ‘행동’으로 읽힙니다. 또한 <자객 섭은낭>은 여성의 시선과 주체성에 대한 성찰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점, 그리고 그 여성 자객이 남성 중심의 권력 구조와 복수 서사에서 벗어나려는 과정은, 고전 무협의 남성 영웅 서사와는 차별화된 새로운 시선을 제시합니다. 섭은낭은 단지 사랑에 의해 흔들리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결정권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가능성을 상징합니다. 결국 이 영화는 장르의 ‘정의’를 지우고, 그 자리에 ‘질문’을 세웁니다. 무협은 무엇인가? 자객은 누구인가? 죽이지 않는 자객은 실패자인가, 혹은 진정한 자유인인가? <자객 섭은낭>은 이와 같은 질문들을 남기며, 관객의 사유를 요청하는 철학적 무협영화로 완성됩니다. 허우샤오시엔은 이 작품을 통해 무협영화의 시공간적, 정서적 틀을 완전히 재해석하며,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제안합니다. 그것은 눈과 귀로 소비하는 영화가 아닌, 침묵과 여백, 그리고 정지된 순간 속에서 발견하는 ‘존재의 미학’입니다.
<자객 섭은낭>은 무협이라는 장르의 껍질 속에 깊은 철학과 아름다움을 담아낸 보기 드문 영화입니다. 말보다는 침묵으로, 액션보다는 응시로, 이야기보다는 정서로 관객을 사로잡는 이 작품은,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집니다.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절제된 미학과 시적인 영상은 이 영화를 단순한 서사극이 아니라, 예술적 체험의 장으로 승화시키며, 무협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합니다.